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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laimer: 이 보고서에 포함된 어떠한 내용도 투자 조언이 아니며, 투자 조언으로 해석되어서도 안됩니다.
1. 크립토 시장이 침체되면서 AI가 시장의 침체를 포장하는 내러티브 도구로 되었다. 2025년 글로벌 VC 투자의 50% 이상이 AI 섹터로 집중되면서 크립토 VC 딜 수는 전년 대비 21% 감소했다. Block(40%, 4,000명), Gemini(30%), Crypto.com(12%)은 몇 주 사이 4,500명 이상을 감축하며 'AI 피봇'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2. 크립토 기업은 AI에 자본과 인력을 빼앗긴 상태에서 역으로 AI를 내러티브로 활용하여 불가피한 비용 절감을 '전략적 피봇'으로 재포장하고 있다. Oxford Economics는 "AI로 대규모 인력을 대체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으며, Deutsche Bank는 "AI 정리해고 워싱이 2026년의 주요 특징이 될 것"이라 경고했다.
3. 크립토 업계의 구조적 재편은 AI 피봇보다 제도권 진입이라는 더 근본적인 동력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 교차점에 위치한 기업이 향후 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AI 내러티브의 크기가 아니라 핵심 사업이 기관화 및 규제화라는 거시적 전환 속에서 어떤 포지션을 확보하고 있느냐다.

1. AI로 포장한 구조조정

크립토 자본과 인력의 이탈

크립토 기업의 AI 피봇을 이해하려면 먼저 AI 시장과 크립토 시장의 투자 현황을 살펴봐야 한다. 2025년 한 해 동안 전체 벤처 투자금 4,250억 달러 중 AI 분야에만 2,110억 달러가 투자되었다. (약 51%) 같은 기간 크립토 VC 딜 수는 1,050건에서 830건으로 21% 감소했다.

AI 스타트업이 '더 높은 성장성'을 제공하면서 벤처 자본은 크립토에서 AI로 급속히 재배치되었다. 자본의 이탈은 곧 인력의 이탈로 이어졌다. Github 기준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주간 코드 커밋은 75% 감소, 활성 개발자는 56% 감소(약 4,600명)를 기록했다. 이더리움 -34%, 솔라나 -40%, 베이스 -52%를 기록했다. GitHub의 AI 레포지토리가 430만 개를 돌파하는 동안 크립토 생태계는 개발자와 자본 모두를 AI에 빼앗기며 수축했다.

(아르테미스)

이 침체의 한복판에서 크립토 기업들은 감축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 감축의 명분은 AI였다.

2026년 2월 26일, Block의 공동창업자 잭 도시는 공개한 주주 서한에서 전체 인력의 약 40%에 해당하는 4,000명의 감축을 발표했다. 잭 도시는 서한에서 "우리가 만들고 사용하고 있는 인텔리전스 도구가 더 작고 수평적인 팀과 결합해 기업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것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새로운 업무 방식을 만들고 있다"고 썼다. 동시에 "이 결정은 우리가 어려워서 내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사업은 건강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3주 뒤 3월 19일, Crypto.com의 CEO 크리스 마르살렉은 "이 피봇을 즉시 실행하지 않는 기업은 실패할 것이다. 즉시 움직여서 최고의 AI 도구를 최고의 인재와 결합하는 기업은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수준의 규모와 정밀성을 달성할 것이다"라고 게시하며 약 1,500명 인력 중 12%(약 180명)의 감축을 공표했다.

그 사이 Gemini, Messari, Algorand, OP Labs, PIP Labs 등 많은 크립토 회사들이 잇따라 감축을 발표했다. 윙클보스(Winklevoss) 형제가 이끄는 Gemini는 2월 초 전체 인력의 약 25%(200명)를 감축한다고 발표한 뒤 3월 중순까지 감축 규모가 30%로 확대되어 잔류 인력이 약 445명에 이르렀다. 회사는 주주 서한에서 "AI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곧 타자기를 들고 출근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Messari는 2023년 이후 세 번째 감축을 단행하며 CEO 에릭 터너(Eric Turner)가 물러나고 CTO 디란 리(Diran Li)가 후임으로 취임했다.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이 해고당함과 동시에 회사는 AI - first company를 선언했다.

2.AI 워싱인가, 진짜 전환인가

생산성이 100배 개선되었다면, 왜 수익성은 악화되는가

AI가 크립토 시장의 자본과 인력을 흡인하여 침체를 유발했다면 그 침체에 대한 기업의 대응, 인력 감축과 비용 절감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 감축을 'AI 때문에 축소해야 했다'가 아니라 'AI로 전환하기 위해 축소한다'고 프레이밍하고 있다. 동일한 현상의 원인(AI에 의한 침체)과 서사(AI를 향한 피봇)가 뒤집히는 이 역설이 2026년 크립토 업계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이다.

Gemini의 윙클보스 형제는 "AI가 엔지니어 생산성을 기존 대비 100배 확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Gemini는 연간 $5.8억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기업가치는 2021년 고점 대비 82% 하락했다. 영국, 유럽, 호주 시장에서 전면 철수하며 최고운영책임자(COO),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법무책임자(CLO)를 포함한 임원 다수가 이탈했다. 주주들은 전략 변경과 주가 하락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생산성이 100배 개선되었다면 수익성이 동반 개선되거나 최소한 비용 구조가 가시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러나 Gemini의 재무 지표는 그 어떤 방향에서도 AI 전환의 실질적 효과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Gemini의 주가 추이

Block의 사례는 좀 더 복잡하다. 잭 도시는 감축이 사업 부진 때문이 아님을 강조하며 Q4 총이익 $28.7억(YoY +24%)을 제시했다. CFO 아므리타 아후자(Amrita Ahuja)는 2025년 9월 이후 엔지니어 1인당 프로덕션 코드 배포량이 4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발표 직후 Block 주가는 18~24% 상승했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2026년 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러한 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결론은 "기업이 AI로 대규모 인력을 대체하고 있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업이 정리해고를 나쁜 소식이 아닌 좋은 소식으로 포장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AI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이 투자자에게 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도이치 뱅크의 애널리스트들은 더 나아가 "AI 정리해고 워싱(AI redundancy washing)이 2026년의 주요 특징이 될 것"이라 경고했다.

이 역설의 구조적 배경은 자본 시장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크립토 VC 딜 수는 1,050건에서 830건으로 21% 감소했다. 대표적인 크립토 VC Paradigm 조차 최대 $15억 규모의 신규 펀드를 AI, 로보틱스로 확대하고 있으며 한국 크립토 VC 해시드도 AI 창업자 지원 프로그램인 바이브랩스를 출시했다.

AI가 크립토의 자금줄을 조이고 있는 것이다. 이 환경에서 크립토 기업이 "AI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투자자에게 인원 감축을 전략으로 보이게 하는 동시에, AI 자본이 지배하는 VC 시장에서 자금 조달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생존적 포지셔닝이다. AI에 자본을 빼앗긴 기업이, AI를 서사로 입어야만 남은 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구조다.

다행히 AI 피봇이 모두 의미없는 것은 아니다. Block이 주장한 엔지니어 1인당 코드 생산성 40%+ 향상은 구체적인 지표이며 이 수치가 사실이라면 소프트웨어 개발, 데이터 분석, 고객 지원에서 AI가 실질적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Messari의 디란 리 신임 CEO가 기관급 크립토 데이터를 AI 에이전트에 개방한 것은 인력 감축의 명분이 아닌 제품 레벨의 전환이다. 쟁점은 AI가 생산성을 향상시키느냐가 아니라 생산성 향상을 전사적 인력 대체의 근거로 확대하는 논리적 도약이 정당화되느냐에 있다. 현 시점에서 그 도약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제한적이라고 판단된다.

3. 크립토 윈터와 AI 윈터

2022년에는 시장 탓, 2026년에는 AI 탓

2022년 크립토 윈터에는 업계에 26,000명 이상의 대규모 인원 감축이 있었다. 당시 기업들이 내세운 명분은 명확했다. 테라/루나 붕괴, FTX 파산, 금리 인상에 따른 위험자산 이탈 등 누구도 '기술 혁신적 전환'이라 포장하지 않았다. 생존을 위한 비용 절감이었고 기업들은 이를 솔직히 인정했다.

2026년의 감축 규모는 2022년보다 작다. 그러나 내러티브 프레이밍은 반대다. 2022년에는 '시장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감축'이었던 것이 2026년에는 '전략적 AI 피봇'이 되었다. Crypto.com의 CEO 마르살렉은 "즉시 실행하지 않는 기업은 실패할 것"이라 했고, Block의 잭 도시는 "대부분의 기업이 뒤처져 있다며 자신의 결정이 정직하게 내린 선제적 조치임"을 강조했다. 인원 감축을 시장 상황에 부합하는 내러티브를 입혀 투자자에게 위기 대응이 아닌 미래 선점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를 '내러티브 구조조정(Narrative Restructuring)'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이 구조적 비용 절감을 실행하면서 시장의 지배적 담론을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2022년에는 '시장 상황이 나빴다'가 유일한 내러티브였기에 주가 하락과 투자자 이탈이 동반되었다. 2026년에는 AI라는 강력한 담론이 존재하기에 동일한 비용 절감이 주가 상승(Block의 경우 18~24%)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Block 투자자들이 환호한 것은 4,000명 감축 자체가 아니라 그 감축이 'AI 시대의 선제적 적응'이라는 내러티브 안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2026년이 2022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AI라는 경쟁 섹터가 자본과 인력을 동시에 흡인하고 있다는 구조적 요인이다. 2022년 크립토 윈터에서 유출된 자본과 인력은 시장에서 버티며 다음 사이클을 기다렸다. 하지만 2026년에는 AI라는 명확한 대안이 존재한다.

링크드인의 2026년 1월 노동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2025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130만 개의 AI 관련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었으며 AI 엔지니어 직무는 같은 기간 13배 늘어났다.

크립토에서 이탈한 개발자와 자본이 '돌아올 곳'이 아니라 '갈 곳'을 찾은 것이다. 이는 이번 사이클의 회복 속도가 과거보다 느릴 수 있는 구조적 근거이며 크립토 기업이 AI 피봇을 선택하는 데 더 절박한 이유이기도 하다.

4.AI 피봇과 제도적 구조 개편

크립토의 기관 시대와 AI

크립토 업계의 구조적 재편은 AI 피봇보다 더 근본적인 동력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Grayscale은 2026년을 "기관 시대의 도래(Dawn of the Institutional Era)"으로 명명하며, 매크로 수준의 대체 가치 저장 수요와 규제 명확성의 개선이 새로운 자본 유입과 채택 확대를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5년 7월 미국 GENIUS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연방 차원의 일관된 기준을 확립하여 기관 진입의 문턱을 낮추었다. 실리콘 밸리 은행은 "정장맨들이 도착했다(The suits and ties have arrived)"고 표현하며 글로벌 송금, 결제 분야에서 기업 수준의 크립토 채택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요한 것은 크립토 네이티브 기업이 인력을 축소하는 동시에 월스트리트의 주요 금융기관은 크립토 인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아이러니가 아니라 산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관 자금의 유입은 '크립토 네이티브의 실험'에서 '제도권 금융의 확장'으로 산업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크립토 네이티브 기업의 일부는 존재 이유의 재정의를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기관화 추세가 곧바로 크립토 네이티브 기업의 퇴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관 자금은 인프라를 필요로 하고 그 인프라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크립토 네이티브 기업이 구축하고 있다. 이 교차점에 위치한 기업이 향후 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AI 내러티브의 크기가 아니라 핵심 사업이 기관화 및 규제화라는 거시적 전환 속에서 어떤 포지션을 확보하고 있느냐다.

AI 피봇은 기업 생존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 기술의 채택은 유효하나 이를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전용하는 것과 실질적 제품 전환 및 매출 증가는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 내러티브의 수명이 아닌 사업의 본질적 경쟁력에 주목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