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2017년 크립토 시장이 전례 없는 호황을 겪으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비롯한 블록체인 생태계의 여러 네트워크의 가치는 엄청난 상승을 기록하였습니다. 특히 BTC는 2017년 1월 약 $6.4b였던 시가총액이 2017년 12월 최고점 기준 약 $329b을 기록하면서 1년 동안 5100%라는 어마어마한 상승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자금이 BTC로 유입되자 이더리움을 비롯하여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타 네트워크들은 BTC의 풍부한 유동성을 각자의 네트워크에서도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로, 2017년 9월 공식적으로 등장한 ERC-20 토큰 표준은 BTC의 넘쳐나는 유동성을 해소시켜줄 단서를 제공해주었습니다. ERC-20이란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토큰이 따라야 하는 가이드라인으로 오늘날 이더리움 상의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한 수많은 Dapp(Decentralized Application, 이하 ‘디앱’)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기술적 표준입니다. ERC-20 덕분에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도 BTC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적 가이드라인을 얻을 수 있었고 이를 활용하여 이더리움 위에서 선보인 BTC가 오늘날 랩드 토큰(Wrapped Token)의 대표 주자인 wBTC입니다.
랩드 토큰은 초기 BTC의 높은 유동성을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활용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현재 수많은 레이어 1이 존재하는 멀티 체인 생태계에서는 체인 간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및 자산의 비효율적인 운영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현 멀티 체인(Multichain) 생태계의 핵심이자, 블록체인 내 자본의 효율성을 향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랩드 토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 랩드 토큰(Wrapped Token)이란?
랩드 토큰, 래핑 자산, 래핑 코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랩드 토큰은 어떠한 토큰이 그것이 속해있는 네이티브 체인(ETH의 경우 이더리움)이 아닌 다른 네트워크에서도 동일한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포장한(wrap) 토큰을 의미합니다. 가장 유명한 랩드 토큰인 wBTC를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wBTC는 이더리움 및 트론 네트워크에서도 BTC를 사용하기 위해 고안된 랩드 토큰으로 1 wBTC는 1 BTC와 동일한 가치를 가집니다. 마치 오락실에서 게임기를 사용하기 위해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는 것처럼, BTC를 wBTC로 래핑 한다면 사용자는 자신이 보유한 BTC를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가치를 누릴 수 있습니다.
2.1. 랩드 토큰의 발행 구조
랩드 토큰의 발행에는 다음 세 가지 핵심 역할군이 존재합니다.
- 사용자 : 랩드 토큰을 발행하려는 목적으로 기초 자산을 제공
- 중개인(Merchant) : 사용자와 수탁인(custodian)을 이어주는 역할로 랩드 토큰의 분배를 담당 ex. Aave, Maker, Kyber Network
- 수탁인(Custodian) : 사용자의 기초 자산을 수탁하는 주체로 랩드 토큰의 발행 및 소각을 담당 ex. BitGo
그리고 위 세 역할군은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쳐 랩드 토큰을 생성합니다.
- 사용자가 중개인에게 래핑(wrapping)할 토큰을 전달
- 중개인이 수탁인에게 사용자로부터 받은 토큰을 전달
- 수탁인이 랩드 토큰 발행 후 중개인에게 다시 전달
- 중개인은 사용자에게 랩드 토큰을 전달
1. 사용자 → 중개인
중개인이란 Aave, Maker, Kyber Network 등 사용자와 수탁인 사이에서 래핑 할 기초 자산과 랩드 토큰을 전달해주는 주체입니다. 랩드 토큰을 발행하기 위해서 우선 사용자는 중개인에게 래핑 할 기초 자산을 전달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개인은 사용자에 대한 KYC(Know-Your-Customer) 및 AML(Anti-Money Laundering)을 진행합니다.
2. 중개인 → 수탁인
사용자로부터 기초 자산을 전달받은 중개인은 랩드 토큰을 발행하기 위한 트랜잭션을 실행시키면서 수탁인에게 해당 기초 자산을 제공합니다. 이때, 수탁인은 전달받은 기초 자산을 컨트랙트에 동결시키고 랩드 토큰을 발행하기 위해 중개인이 실행한 트랜잭션과 동일한 가치의 기초 자산이 전송되었는지 확인합니다.
3. 수탁인 → 중개인
수탁인은 랩드 토큰을 발행한 후 이를 중개인에게 다시 전송합니다. 이때 수탁인에 의해 생성되는 랩드 토큰은 반드시 중개인로부터 전달받아 스마트 컨트랙트에 예치한 기초 자산의 가치와 동일한 가치를 가져야 합니다.
4. 수탁인 → 사용자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중개인이 수탁인으로부터 전달받은 랩드 토큰을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과정입니다. 사용자는 이로써 기초 자산을 수탁인에 예치하고 이와 동일한 가치의 랩드 토큰을 다른 체인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랩드 토큰의 소각은 발행과 반대 과정을 거칩니다. 사용자가 중개인에게 소각을 요청하며 랩드 토큰을 제공하면 중개인은 이를 수탁인에게 전달합니다. 랩드 토큰을 전달받은 수탁인은 이를 소각한 후 발행 당시 동결시켰던 사용자의 기초 자산을 중개인에게 전송합니다. 이후 사용자는 중개인으로부터 기초 자산을 전달받으며 랩드 토큰 소각 과정이 마무리됩니다.
3. 랩드 토큰의 종류
3.1. wBTC
wBTC는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BTC를 ERC-20 형식으로 래핑 한 토큰입니다. 2019년 BitGO, Kyber Network, Ren protocol(구 Republic Protocol)이 컨소시엄 형태로 출시한 wBTC는 현재까지 가장 유명하고 널리 쓰이고 있으며 랩드 토큰들 중 시가 총액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BitGo
BitGo는 다중 서명 지갑(Multi-Sig Wallet)을 통한 기관 자금 수탁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기업으로 wBTC의 초기 파트너이자 현재까지 wBTC의 유일한 수탁인입니다. 랩드 토큰 발행의 구조적 특성상 사용자는 자신의 기초 자산을 맡기는 수탁인을 신뢰해야만 하기 때문에 BitGo는 사용자들을 안심시키고자 자금이 안전하고 투명하게 보관되어있다는 사실을 ‘준비금 증명(Proof of Reserve, PoR)’을 통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BitGO는 온체인 대시보드를 통해 PoR을 제공하고 있으며 사용자는 해당 대시보드에서 wBTC 유통량, BitGO에 동결되어 있는 BTC 양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는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블록 익스플로러 이더스캔(Etherscan)에서도 교차 검증이 가능하여 BitGo에서 의도적으로 대시보드를 조작할 위험을 막아줍니다.
또한 그들이 수탁 중인 BTC가 어떠한 지갑에서 얼마만큼 보관 중인지, 해당 지갑으로 BTC가 언제 들어오고 빠져나갔는지 등 모든 거래 정보를 온체인 검증을 통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용자는 단순히 wBTC와 BTC의 총액을 비교하는 것을 넘어 각 거래별로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자신이 믿고 자산을 맡긴 BitGo가 어떻게 자금을 관리하는지 보다 더 투명한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wBTC DAO
wBTC DAO는 메이커다오(MakerDAO), 오미세고(OmiseGO), 고팍스(GOPAX) 등을 포함하여 총 17개의 조직으로 이루어진 DAO로 wBTC의 거버넌스를 담당합니다. 해당 주체들은 각자 다중-서명 지갑에 대한 열쇠를 가지고 있으며 해당 열쇠를 통해 다음 3가지 활동에 대해 투표를 통해 의사결정을 수행합니다.
- wBTC와 관련한 스마트 컨트랙트를 관리 및 변경
- wBTC 발행과 관련한 회계 감사
- 중개인과 수탁인 선정 및 퇴출
wBTC는 여러 명의 DAO 구성원들을 통한 탈중앙화 된 의사결정으로 발행 과정에서 BitGO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중앙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3.2. renBTC
renBTC는 오픈 소스 유동성 프로토콜인 Ren protocol에서 출시한 랩드 비트코인으로 wBTC에 이어 랩드 BTC 중 시가 총액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renBTC는 wBTC와 마찬가지로 BTC를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ERC-20 기반 토큰으로 래핑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renBTC는 BTC를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래핑 해준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발행 주체에 있어서는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wBTC가 중개인과 수탁인이라는 지정된 기관이 직접 랩드 토큰 발행과 소각에 참여하는 반면, renBTC는 RenVM(Virtual Machine)을 활용한 RenBridge를 통해 특정 기관의 개입 없이 사용자가 직접 랩드 토큰을 발행 및 소각할 수 있도록 합니다.
RenVM
RenVM은 Ren protocol의 핵심이자 사용자가 RenBridge를 통해 BTC를 renBTC로 래핑 할 수 있도록 하는 가상 머신(Virtual Machine)입니다. 여기서 RenBridge란 사용자가 다양한 체인들 간 토큰 래핑을 실행시키는 디앱으로 사용자는 이곳에서 래핑을 실행시킬 기초 자산과 랩드 토큰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renBTC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초 자산(BTC)을 RenVM에 전송해야 합니다. 고객이 실행시킨 거래를 확인한 RenVM은 해당 기초 자산을 동결시키고 사용자에게 발행 서명(minting signature)이라는 증표를 전달합니다. 발행 서명이란 사용자가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자신이 맡긴 BTC와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renBTC를 수령할 수 있도록 보증해주는 서명을 의미합니다. 이후 사용자는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발행 서명을 제출하여 renBTC를 전송받습니다. 소각은 wBTC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용자가 renBTC를 소각하면 RenVM가 수탁하고 있던 BTC를 전송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해당 발행 과정에서 RenVM에서 사용자가 전송한 BTC를 수탁하고 트랜잭션을 검증하며 발행 서명을 사용자에게 전송하는 모든 작업은 다크노드(Darknodes)라고 불리는 수 천 개의 독립적인 노드들에 의해 수행됩니다. 각 다크노드들은 반드시 100,000개의 REN 토큰을 예치해야 하며 다크노드를 실행시키기 위한 소프트웨어인 VPS(Virtual Private Server)를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각 다크노드는 RenBridge에서 발생하는 거래 수수료 중 일부를 인센티브로 제공받지만 다크노드가 악의적인 행동을 하여 프로토콜에 피해를 입혔거나 사용자가 예치한 자산의 손실에 책임이 있는 경우 해당 다크노드가 예치한 REN 토큰을 슬래싱(slashing)하는 방식으로 페널티를 부과하여 RenVM이 원활히 작동될 수 있도록 합니다.
3.3. Wrapped.com
Wrapped.com은 암호화폐 수탁 업체 Anchorage와 런치패드(Launchpad) Tokensoft가 협력하여 2020년 10월 출시한 크로스-체인 브릿지(cross-chain bridge)입니다. 크로스-체인 브릿지란 서로 다른 체인간 의사소통(토큰 거래, 메시지 전송 등)을 원활하게 해주는 솔루션으로 사용자들은 Wrapped.com을 통해 다양한 토큰을 해당 토큰의 네이티브 체인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체인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Wrapped.com은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사용할 수 있는 wZEC를 시작으로 cETH, wXRP, xBTC 등 2022년 현재 이더리움, 셀로, 스택스 등 다양한 체인에서 사용할 수 있는 랩드 토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용자는 해당 랩드 토큰들을 wrapped.com을 통해 Uniswap, Sushiswap, Ubeswap 등 다양한 디앱에서 거래할 수 있습니다.
또한 Wrapped.com은 2021년부터 오라클 네트워크 Chainlink와의 협업을 통해 PoR을 제공하고있어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수탁인이 보유하고 있는 기초 자산과 시중에 유통중인 랩드 토큰의 발행량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랩드 토큰의 리스크
랩드 토큰 발행을 위해 수탁인에게 기초 자산을 맡겨야 한다는 구조적 특성상 랩드 토큰은 필연적으로 수탁인 신뢰 리스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수탁인이 나쁜 마음을 먹고 사용자로부터 전달받은 기초 자산을 악의적으로 사용한다면, 사용자는 랩드 토큰을 소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초 자산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더하여 지난 11월에 발생한 FTX 사태로 인해, 암호화폐 거래소가 사용자의 자금을 투명하게 관리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유용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크립토 산업 전반에 거래 상대방을 ‘믿고’ 내 자산을 수탁한다는 행위에는 사실 엄청난 리스크가 잠재되어 있다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이러한 우려는 지난 11월에 발생한 soBTC와 soETH 디페깅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soBTC와 soETH는 각각 BTC와 ETH를 솔라나 네트워크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랩드 토큰으로 두 토큰 모두 FTX에서 발행을 담당하였습니다. soBTC와 soETH 모두 기초 자산인 BTC, ETH와 1:1의 가격 비율을 응당 가져가야 하지만, FTX 파산 이후 발행 주체를 잃어버린 두 랩드 토큰 모두 기초 자산에 비해 엄청난 할인율이 적용된 채 거래되었습니다. 11월 10일 soBTC가 BTC에 비해 35%가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약 3일 만에 최대 90%가 넘는 할인율을 기록하였습니다. 동일한 시기에 soETH 역시 80%가 넘는 할인율을 기록하며 시장 참여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겨주는 한편, 시장 전반에 수탁인 리스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5. 마치며
랩드 토큰은 체인 간 상호운용성을 증가시키고 사용자의 자본 효율성을 높여준다는 측면에서 수많은 레이어 1이 존재하는 현재의 멀티 체인 생태계에서 필수 불가결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랩드 토큰이라는 프로덕트의 발행 구조 상, 현재까지 수탁인을 믿어야만 한다는 신뢰 리스크는 꾸준히 문제점으로 제시되어왔습니다.
시가 총액 1위에 위치하고 가장 널리 사용되는 wBTC 역시 Alameda Research가 중개인 중 가장 많은 랩드 토큰 발행 및 소각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FTX 사태가 발발한 이후 견고했던 페깅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현재의 시스템 상에서 랩드 토큰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편리함 속에 감춰진 수탁인 리스크를 항상 확인해야 합니다.
블록체인 생태계가 발전하고 풍부해질수록 하나의 네트워크의 유동성이 네이티브 토큰에만 국한되지 않도록 해주는 랩드 토큰의 중요성은 부각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 속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랩드 토큰과 기초 자산의 가치가 1:1을 유지해야 한다는 가치의 동등성(value parity)과 랩드 토큰 소각 시 사용자가 수탁인에게 맡긴 기초 자산이 온전하게 사용자로 돌아가야 한다는 상환가능성(reedemability)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가올 랩드 토큰은 수탁 위험이 최소화되거나 존재하지 않는 더욱 투명하고 안전한 방향으로 발전하길 기대하면서 이번 글을 마치겠습니다.
참고자료
- WBTC Network, Wrapped Tokens Whitepaper, 2019
- RenProject, Ren
- Alexander Noghreia, Wrapped 2021: In Review
- The Defiant, FTX-Backed Bitcoin and Ether Tokens Depeg On Solana